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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올빼미

첫 스카웃 제의

by 피어나는 2018. 11. 27.
아직 최종면담이 나오기 전이긴 한데... ㅎㅎ
재미있는 경험이어서 과정을 되새겨 본다.

첫 제의는 기술영업이었다.
기술영업에 대한 로망이 있던 나는 너무나 감사해하며 매니저 미팅을 하러 갔다.
기술영업부에 계시는 분이 후임으로 나를 점찍어 추천하신거라 더더욱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매니저 미팅에서 해당 롤은 영업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매니저와 나 둘다 당황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니저의 직무 설명 중)
나: (쭉 듣다가 영 이상해서) 기술영업이 왜 밸류세팅까지 하나요?
매니저: 아니요, 기술영업은 뒤에서 우리를 백필해줄거구요. 우리가 하는거죠.
나: ......우리라는게?

그렇다.

내가 추천 받은 팀은 영업과 기술영업 몇명이 모여 한 팀을 이루는 구조였다. 나를 추천해준 분은 그 중에서 기술영업 팀원을 하나 더 뽑는 것으로 잘못 알고 추천해주신 거였다. 매니저는 직접 만나서 보겠다며 긴 말없이 미팅을 잡으신 거고.


이런 오해 속에서도, 놀랍게도. 매니저는 나를 괜찮게 평가해주셨다.(헐)

영업은 여태껏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직무이기에 시간을 달라는 나의 말에 그럼 기다려주겠다고 하셨다.(헐)


그리고 나는 여기저기 발품팔며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영업이란 직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영업은 회사 생활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직무이며, 그 팀이 드라이빙하려는 프로덕트에 대해서도 매우 좋게 평가했다.


아버지 친구: 님 왜 고민함...? 거기 망해도 남는 자리임.

나: 핫... 레알? 하지만 영업으로 가면 이제 엔지니어는 다신 못하잖아요? 나는 기술직도 좋....

아버지 친구: 풋, 그 놈의 알량한 기술. 쟁이들은 그 놈의 기술 없으면 죽는 줄 알더라. 원래 정들었을 때 떠나는 거다.


삼사일 머리쥐뜯하다가, 어차피 기술 배우겠다고 왔을 때도 뭘 알고 시작한게 아니었음을 떠올렸다. 남들보다 부족한 배경이라는 불안감에 울며울며, 그래도 어떻게든 제 몫을 해내고 있던 나. 지금 이렇게 부서 이동 제안을 받자 우습게도 이제는 내가 이 직업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정들었을 때 떠나는 거라고 했다.


만약 이동을 하고자 한다면, 또 오기 어려운 기회였다. 남을까? 넘어갈까. 나는 매니저에게 영업을 해보겠다고 전화했다.


매니저는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미팅 때 만난 분 아닌 줄 알았음) 영업 이사와의 파이널 미팅을 잡아주겠다고 하셨다. 바로 다음날로 미팅이 잡혔고, 나를 추천해주신 분에게 물어보자 영업 이사님은 아주 비즈니스 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분이시라고 했다. 쉽지 않을거지만 밀리지 마랏! 이라는 파이팅을 받으며 도착한 미팅룸.


음... 어려운 분이셨어...^^...

그분의 마음 속에서 내가 51점, 49점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사실 애매한 것이... 나의 오해로 얼룩진 실무진 면접, 기술영업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이 직무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단 삼일의 시간...

그분이 무엇으로 나의 포부를 평가하신단 말인가ㅋㅋㅋㅋ


영업직 잘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나도 선택의 기간이 짧아 대단한 포부를 밝히는 것이 조금 민망하다. 그러나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겠다. 고 말하는 그 이상의 어필은... 오바육바칠바..........또르르...


이사님이 만약 이 팀이 아닌 다른 프로덕트 영업이라면 지원했을 거냐고 물어서 솔직하게 그렇다면 지원하지 않았을거라고 했다. 나는 이 프로덕트 때문에 지원했다고. 이사님의 부담스럽다는 동공 지진.... 


실무진 면접에서는 좋은 평가를 얻었던 차분한 성격이 이사님의 눈에는 아리송했나보다. 긴장해서 말이 없는 거에요, 원래 차분한 성격이세요? 원래 차분한 성격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사님의 마음에서 나는 40점이 되는 듯 보였다.


ㅋ.....

그러니까요 이사님. 저도 제가 실무진 면접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르겠어요. 매니저 님은 왜 제가 영업을 잘 할 수 있을거라고 평가하셨을까요?? 그래도 저는 닥치면 울며불며 어떻게든 합니다... 망하면 같이 망하는 거죠 뭐... 제 인생은 원래도 정글이었는데요 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라는 말은 속으로만 했다.


질문 없냐는 말에 나는 굉장히 주저하면 입을 열었지만 차마 말을 정리하기 어려워 머뭇거렸다. 이사님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내 목표가 뭐냐고?


네..... 좀 당돌해서 놀라셧죠.... 이사님은 올해보다 세배 더 파는게 목표라고 했다. 어차피 우리 팀이 못 팔면 너네 엔지니어 그룹도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야. 알지?


그렇게 영업 이사 미팅은 찜찜하게 끝났다.

아리송한 마음으로 나오면서 아마 안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던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라고.


그래도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게다가 나는 취준생 시절에도 면접에 자신이 없어 고생했었다. 집에 와서 아버지와 이야기하며 새옹지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젊은 시절을 말해주셨다.

남들 다 떨어지는 장교 면접에 혼자 붙어 좋아했는데, 장교출신은 당연히 붙는 모 회사 면접은 또 혼자 떨어졌다. 이 일이 큰 트라우마가 되었고, 이후로도 희한하게 국내회사 면접은 당신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고(난 역시 아빠 딸... 큽...). 그러나 그런 고난의 탈락이 있어 결국 지금의 회사에 붙은 결과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앞에 모 회사에 붙었다면 여긴 지원도 안했을테니까. 아버지는 말하셨다.


그러니 혹여 영업 이사가 너를 떨어뜨리더라도 너무 실망하거나 네 탓으로 돌리지 마.

인생을 길게 보면, 한때의 불행은 훗날의 행운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법이니.


삶은 어디로 흘러갈까. 삶의 모든 기회에 나를 끼워맞추려 일희일비하지 말 것. 나는 내 모양대로 예쁘다. 나에게 맞는 기회를 잘 잡기 위해 열심히 현실을 보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