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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상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본 사랑

by 피어나는 2019. 6. 6.

 

단군 이래 최고의 슈퍼스타라고 불리는 방탄소년단이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장. 보헤미안 랩소디의 그곳.

엔터 산업이나 음악에 큰 관심 없이 살아온 나는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도 없다. 음악콘서트는 공짜티켓이 생겨 친구 데리고 가본 경험이 한번 있을 뿐이고, 한 가수의 앨범을 두 번 이상 구매한 적 없다는 말로 모든 설명이 충분하겠지. 그러나 웸블리 공연을 90분만에 매진시킨, 웸블리 역사상 12번째의 전석 매진 단독 콘서트를 보기 위해 나는 브이앱을 깔고 기꺼이 공연실황을 예매했다. 궁금했다, 그들이 거기서 쓸 역사가. 웸블리를 위해 준비한 그들의 공연은 어떤 수준일지. 

그런데 웸블리 공연 실황은 뜻하지 않게도 슈퍼스타 방탄소년단이 아닌, 아이돌과 팬의 관계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마지막 곡을 부르기 전 방탄소년단이 멘트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정확한 워딩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면 대충 이랬다.

RM : 웸블리! 우리가 웸블리에 왔습니다. 정말 꿈만 같아요. 지난번 빌보드에서 1위를 했을 때 사실 저는 빌보드 1위말고 놀란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UK 차트에서도 1위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영국은 저에게 수많은 전설적인 뮤지션이 있는 나라입니다. 영국에는 비틀즈가 있습니다. 퀸, 아델, 에드 시런, 등이 있습니다. 그런 영국에서 우리가 1등을 했다는 사실은 정말로 인정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웸블리에서 공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미 여러분 덕입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런던은 언제나 저에게 최고의 날을 만들어줍니다.

 (팬들 국뽕에 차올라서 난리남)

진: 웸블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에요. 제가 무엇을 할지 아시죠? 에오!

(국뽕 원샷 투샷 더 난리남)

지민: 웸블리이이! 우리가 웸블리에서 공연한다고! 웸블리에서! 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더니 친구들이 저한테 너 웸블리에서 에오! 할거지? 하면서 놀렸어요. 전 그거 안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이거에요, 아아아미이이이이!

(팬들 실신)

(절로 물개박수를 치고 있는 나)

7년차 아이돌의 농익은 멘트는 정말...... 대단했다. RM이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영국사람도 아닌 내가 다 영국 국뽕에 취해 마음이 울렁거리더라. 거기에 마지막에 지민이 던지는 아아아미이이이! 무엇을 더 말하리오....... 

공연은 당연히 훌륭했다. 그러나 그들의 멘트를 듣는 순간 내가 팬이라면 RM와 진과 지민의 저 말 하나로도 행복에 취해 웸블리를 나오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그 순간, 앞서 보았던 그들의 훌륭한 퍼포먼스보다도 저 말을 듣는 저 순간 자신의 아이돌과 진정으로 함께하고 있었을 것이니까.

심금을 울리는 멘트를 들으며 나는 궁금했다. 둘째날에는 어떤 말을 할까. 웸블리 실황은 첫날만 중계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둘째날에는 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궁금했다. 첫째날은 웸블리의 첫날이니 당연히 엄청난 공을 들이지 않았겠나. 하지만 둘째날에는 똑같은 이야기를 또 할 수도 없을테고, 무슨 말로 팬들에게 감사를 전할지, 과연 이만큼의 감동을 또 전하는 게 가능할런지.

그런데 웸블리 둘째날에 팬들의 이벤트 때문에 방탄소년단이 눈물을 흘렸다고 난리가 났다. 영상에서 마지막 곡을 부르려고 준비중인 방탄소년단은 예정된 곡이 아닌 다른 곡이 나와 당황한다. 그리고 관객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를 알아들은 방탄소년단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노래가 끝난 후 멤버들은 Let's stay young forever together!라고 외쳤고 지민은 울면서 이 노래는 자신에게 엄청 위로를 주었던 노래라고 말했다. 저 노래가 뭔지 몰라서 공감이 안돼 찾아보았다가 나도 울었다. 

<Young Forever 가사>

막이 내리고 나는 숨이 차
복잡해진 마음, 숨을 내쉰다
오늘 뭐 실수는 없었었나
관객들의 표정은 어땠던가
그래도 행복해 난 이런 내가 돼서
누군가를 소리 지르게 만들 수가 있어서
채 가시지 않은 여운들을 품에 안고
아직도 더운 텅 빈 무대에 섰을 때

더운 텅 빈 무대에 섰을 때
괜한 공허함에 난 겁을 내
복잡한 감정 속에서 삶의 사선 위에서
괜시리 난 더 무딘 척을 해
처음도 아닌데 익숙해질 법한데
숨기려 해도 그게 안돼
텅 빈 무대가 식어갈 때쯤
빈 객석을 뒤로하네

지금 날 위로하네 완벽한 세상은 
없다고 자신에게 말해 난
점점 날 비워가네 언제까지 내 것일 
순 없어 큰 박수갈채가
이런 내게 말을 해, 뻔뻔히
니 목소릴 높여 더 멀리
영원한 관객은 없대도 
난 노래할 거야
오늘의 나로 영원하고파
영원히 소년이고 싶어 난 Aah

Forever we are young
나리는 꽃잎 비 사이로 
헤매어 달리는 이 미로
Forever we are young
넘어져 다치고 아파도 
끝없이 달리네 꿈을 향해

Forever ever ever ever
(꿈, 희망, 전진, 전진)
Forever ever ever we are young

Forever

 

아니 어떻게 이 노래를 거기서 부를 생각을 했어요....

빌보드에 올랐을 때, 웸블리에 입성했을 때, 그들은 이제 내려갈 일이 남았구나 라고 마음의 준비를 한켠에서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만큼 치솟으면서, 이 이상이 있을까? 이 이상이 있을까? 놀라워 하면서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을까.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두려움은 지금 그들이 올라온 자리에서 느끼는 희열의 그림자일테니, 그 영광의 그림자는 그들의 기쁨보다 더 큰 존재가 될 때도 있지 않았을까. 

정상에 선 그들에게 이 순간이 영원할 거라고 노래해주는 팬들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외국팬들이니 모든 가사를 다 부르기 어려워 후렴만 불렀지만 사실 그들은 다른 가사도 불러주고 싶지 않았을까.

Forever we are young
영원한 관객은 없다해도 이 순간을 잊지마
너희는 우리에게 영원한 소년일거야

팬들이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걸 보며 나는 더이상 RM이 무슨 멘트를 말했을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저런 이벤트를 준비하는 팬심이란게 무엇인지 생각했다. 

자기 돈과 시간과 심력을 기울여 찾아간 자리에서 자신의 아이돌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마음은 어떤 사랑일까.

난 당연히 방탄소년단이 팬들에게 무엇을 해줄지만 기대했다. 연예인과 팬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본적 없는 나는 시간과 돈들여 찾아온 관객을 그들이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지 외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지불한 가치만큼 받아가는 것이 당연한 팬의 권리만 생각했다. 그들이 도리어 사랑을 주려고 뭔가를 준비해 갔을 거란 건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콘서트에서 팬들이 자신의 아이돌에게 이벤트를 여는 건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적인 웸블리에서, 다른 곡도 아닌 Young Forever는 그 무엇보다 특별할 걸. 자신의 아이돌을 위해 그 곡을 선별해서 고르고 부르며 행복해했을 팬심은 충격이었다. 내 예상보다 깊고 깊은 특성을 갖고 있었다, 아이돌과 팬의 관계라는 건.

지금까지 잘해왔어 너희의 고생을 우리가 봤어
이제 우리가 여기에 있구나 이 순간을 영원할 것처럼 즐기자
Forever we are young

Young Forever를 부르며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행복했겠지. 한사람도 빠짐없이 이 순간이 그들의 인생에서 영원히 함께 할 것임을 느꼈겠지. 

웸블리 공연을 보며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처음보는 종류의, 그 자리의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그 퍼부어지는 사랑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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