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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올빼미

밤의 공벌레 - 이제니

by 피어나는 2021. 6. 20.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번으로 부족해 깜빡였다. 너는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그릇이 부족하면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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