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읽는 올빼미

슬픈 환생 - 이운진

by 피어나는 2018. 1. 20.

몽골에서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본다

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

거짓말할 때의 표정 같은 거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

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

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

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

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

양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

또 고비사막의 외로운 밤을 잊고

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

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

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

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

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

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시 읽는 올빼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수부 - 서덕준  (0) 2018.03.20
장미 도둑 - 서덕준  (0) 2018.03.20
막막함이 물밀듯이 - 이승희  (0) 2018.01.20
하루살이와 나귀 - 권영상  (0) 2018.01.20
인공위성Y - 서덕준  (0) 2018.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