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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올빼미

죽음의 관광객 - 허수경

by 피어나는 2018. 3. 20.

한여름에 들른 도시에는 장례 행렬이 도자기를 굽는 집들이 있는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다 하늘로는 도자기를 굽는 연기가 사막 쪽으로 울었다 동쪽으로 넘어가려다 총 맞은 21세 청년이라고 했다


동쪽에는 지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고


이 도시 사람들은 동쪽을 바라보며 희망은 맨 마지막에 죽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이라는 것이 너무나 뜨거워 잡을 수가 없을 때 희망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희망을 신뢰한 적은 없었으나 흠모하며 희망의 관광객으로 걸은 적은 있었지 별이 인간의 말인 희망을 긴 어둠의 터널에 접어두고 먼지로 마셔버리는 것을 본 적도 있었지


눈동자 색깔이 다른 고양이의 고향이라는 도시에서 택시 기사에게 그 고양이를 본 적이 있느냐, 물어보았으나 그는 미쳤소, 하는 표정으로 숯불에 구운 닭이나 먹다 가시오, 라고만 하더라


그러다가 고양이 고기를 먹게 되는 건 아닐까, 만화 캐릭터처럼 웃기게 생긴 고양이 기념물 앞에서 저건 사람이 그린 동물일까 동물이 개어놓은 사람의 표정일까를 망설이는 동안 태양이 제 몸을 다 벗다가 슬그머니 어두운 옷을 집어 입으며 사라지는데


장례 행렬이 지나갈 때 남자들은 울면서 밤하늘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하늘에 뚫린 구멍이 뚫릴 때 청년이 아직 가슴에 피를 흘리며 우주의 난민이 되어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네


동쪽에는 지나가지 못하는 나라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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