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29 나의 친구는 누구인가. 이름은 우울이라고 하네.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냐고 묻던데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해. 오래전부터 나는 우울이 나의 친구인 것을 알았지. 나의 삶은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다. 최근 글도 미뤄두고 회사 아니면 운동으로만 삶을 채우고 있다. 이런 루틴은 꽤나 건강하게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친구를 나도 설명하기 어렵다. 단순한 삶은 생각도 단순하게 만드려나 기대했으나 여전히 갑자기 울고 싶어지고 세상에서 없었던 존재이고 싶다. 내 손 끝에서 이브가 나왔지만 요즈음은 힘이 없다. 2021. 7. 13. 빗나가고 빗나가는 빛나는 삶 - 이제니 기차는 얼음의 나라로 간다고 했다. 하얀 눈 위의 하얀 나무 속을 건너간다고 했다. 왜 그곳에 가려했을까. 왜 그것을 보려 했을까. 너는 얼음도 구름도 바람도 물도 없는 곳에 도착한다. 너는 작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세계는 천장 한 귀퉁이로 모여드는 세 개의 직선에 지나지 않았다. 너는 하나의 꼭짓점에 모인 세 개의 직선을 늘릴 수 있는 데까지 늘리고 늘린다. 직선은 점점 곡선으로 휘어진다. 휘어진 곡선이 너를 향해 모여든다. 무수한 사람이 네 속에서 들끓고 있다. 무수한 목소리가 네 목소리 위로 내려앉는다. 무수한 길들이 너를 지나간다. 한 발 걸어가면 한 발 멀어지는 들판이라고 했다. 기차는 하연 눈 위의 하얀 나무 속을 건너가고 있다고 했다. 너는 기차에 실려 간다. 너는 마비된 채로 나.. 2021. 6. 20. 캔들 - 안미옥 궁금해 사람들이 자신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는지 자기만 알고 있는 죄의 목록을 어떻게 지우는지 하루의 절반을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흰색에 흰색을 덧칠 누가 더 두꺼운 흰색을 갖게 될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은 어떻게 울까 나는 멈춰서 나쁜 꿈만 꾼다 어제 만난 사람을 그대로 만나고 어제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징그럽고 다정한 인사 희고 희다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대체 무엇일까 2021. 6. 20. 밤의 공벌레 - 이제니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 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 2021. 6. 20. 이전 1 2 3 4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