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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올빼미

추위에 대하여 - 이성미

by 피어나는 2018. 1. 3.




네가 올 때마다 육각형 눈이 와. 나는 여름 들판에서 너를 기다려. 하얀 별들이 밤하늘을 뒤덮고, 나의 심장에도 차가운 눈이 내려.


너는 새벽에서 이곳으로 와. 빈방에서 여름으로 와. 그럴 떄 너는 너보다 커 보이거나 작아 보여. 그림자놀이처럼.


침엽수에게 어떤 모양의 잎을 달고 싶으냐고 물으면 흰 왕관처럼 얹힌 눈이 녹아버릴까.


북쪽 여왕의 반대말은 북쪽 왕인가 남쪽 여왕인가 남쪽 허름한 소녀인가 소년인가. 이런걸 궁금해하면 네가 화를 낼까.


담요를 드릴까요. 물어보면 네가 조금씩 녹을까. 녹으면서 허둥댈까.


너는 하얀 자동차를 타고 한 방향으로 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나라로. 눈보라가 치고 침엽수가 자라는 빈방 속의 빈방으로.


나는 옆구리나 심장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 너의 안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하고. 뜨거움이 보자랄 때마다 나는, 발바닥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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