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올빼미46 슬픈 환생 - 이운진 몽골에서 기르던 개가 죽으면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내 꼬리를 잘라준 주인은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가만히 꼬리뼈를 만져본다나는 꼬리를 잃고 사람의 무엇을 얻었나거짓말할 때의 표정 같은 거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 같은 거개였을 때 나는 이것을 원했을까사람이 된 나는 궁금하다지평선 아래로 지는 붉은 태양과그 자리에 떠오르는 은하수양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잊고또 고비사막의 외로운 밤을 잊고그 밤보다 더 외로운 인생을 정말 바랐을까꼬리가 있던 흔적을 더듬으며모래언덕에 뒹굴고 있을 나의 꼬리를 생각한다꼬리를 자른 주인의 슬픈 축복으로나는 적어도 허무를 얻었으나내 개의 꼬리는 어떡할까 생각한다 2018. 1. 20. 막막함이 물밀듯이 - 이승희 이 막막함이 달콤해지도록 나는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모른다. 헛된 예언이 쏟아지도록 나의 혀는 허공의 입술을 밤새도록 핥아댔다. 막막함이여 부디 멈추지 말고 나의 끝까지 오시길, 나의 온몸이 막막함으로 가득 채워져 투명해질 때까지 오고 또 오시길 나 간절히 원했다. 나는 이미 꺾였으니 물밀듯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길.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나뿐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미 낡아버린 루머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깊이깊이 내 몸속에 새겨주시길. 내 피가 아직도 붉은지 열어보았던 날 뭉클뭉클 날 버린 마음들을 비로소 떠나보냈듯이 치욕을 담배 피우며 마음도 버리고 돌아선 길이 죽고 싶다는 말처럼 깊어지도록 밀려오시길. 막막함으로 밥 먹고 사는 날까지. 2018. 1. 20. 하루살이와 나귀 - 권영상 해 지기 전에한 번 더 만나줄래?하루살이가 나귀에게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안 돼.내일도 산책 있어.모레, 모레쯤이 어떠니? 그 말에 하루살이가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섭니다. 넌 너무도 나를 모르는구나. 2018. 1. 20. 인공위성Y - 서덕준 네 동공의 궤도를 돌고 있는 나는너를 추종하는 위성이야 너의 살갗을 맴돌 뿐인데내 마음에선 왜 꽃덤불이 여울져?네 앞에서 나는 왜 언어를 잃어버려? 네가 공전하는 소리는 나를 취하게 해아득하게 해 나는 허파를 잃어버리지이렇게 너의 숨소리는 참으로 달콤한 환청이야 이봐, 보고 있다면 나를 좀 구해줘네게 한 걸음을 못 가 헐떡이는 너의 위성을 2018. 1. 20. 이전 1 ··· 8 9 10 11 12 다음